미국 연방대법원


미국 연방대법원이 125년 넘게 유지돼 온 출생지 자동 시민권 제도의 폐지 여부를 심리하기로 하면서, 미국 내부의 이민 질서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서명했던 행정명령의 헌법 위반 여부를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판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행정명령은 불법 체류 이민자나 단기 방문 외국인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미국 출생아 가운데 매년 수십만 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중대한 조치였다. 다만 해당 명령은 곧바로 법원에 의해 효력이 정지됐고, 이후 소송이 이어지면서 그 위헌 판단이 대법원까지 올라온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1868년 남북전쟁 직후 비준된 미국 수정헌법 14조가 자리한다. 이 조항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의 관할권에 속한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명시하며, 노예제 폐지 이후 새롭게 해방된 흑인들과 그 자녀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은 이 조항을 근거로 출생지주의(jus soli)를 확립했고, 이는 미국의 다민족 체계를 구성하는 핵심 법적 기초가 돼 왔다. 특히 1898년 대법원은 ‘대미 대 아크’ 판결을 통해 중국계 이민자의 자녀에게도 시민권을 인정하며 출생지 시민권이 인종·출신과 무관한 보편적 권리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 해석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관할권에 속한다”는 표현의 의미를 좁게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측을 대리한 존 사우어 법무부 차관은 대법원 제출 서류에서 “14조는 불법 체류자나 단기 체류 외국인의 자녀를 위한 조항이 아니며, 당시 입법 취지는 노예 후손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리는 수정헌법 14조가 현대의 불법 이민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돼 왔다는 보수진영의 오랜 주장과 맞닿아 있다.

이번에 대법원이 심리를 결정함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출생지 시민권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이 보수 성향으로 기운 현 구도에서 역사적 판례가 뒤집힐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법원은 향후 몇 달 안에 변론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되며, 최종 판결은 내년 6월 말이나 7월 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대선 정국과도 맞물려 정치적 파장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문제는 한국에도 여러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출생지 시민권 제도는 한국인 가정 일부가 미국에서 출산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부모가 미국 시민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태어나는 순간 자녀가 자동으로 시민권을 갖게 되는 구조는 교육·진로 전략과 결합해 일정한 수요를 형성해 왔다. 만약 대법원이 출생지 시민권 폐지 또는 제한을 인정할 경우, 관광비자·단기 체류 신분을 이용한 출산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한 출산 전략 자체가 근본적으로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국 내 한국계 불법 체류 가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미국 내 한국계 불법 체류자는 약 15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현재까지는 시민권자로 보호받아 교육·의료·복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제도가 바뀐다면 신생아부터 법적 지위가 불안정해지고 가족 단위의 체류 리스크도 늘어날 수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영사 조력이나 국적 관련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저출산·인구정책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은 혈통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외국인 부모의 국내 출생 자녀에게 자동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미국이 출생지주의를 폐지하는 경우, 세계적으로 혈통주의 강화 흐름이 확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반대로,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변화가 오히려 한국이 이민 유입 정책을 재정비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노동력 부족이 심화되는 산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외국인 인력 유입이 더 필요해지는 만큼, 다른 선진국의 국적 제도 변화를 참고해 대한민국도 새로운 정책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아울러 유학생·주재원·연구자 등 미국에 장기 체류하는 한국인의 가족 계획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미국 체류 중 출산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나, 출생지 시민권이 제한되면 자녀 국적에 따른 장기 거주·교육·취업 계획도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을 기반으로 경력을 쌓으려는 젊은 연구자·전문직 가정에 이번 판결은 중요한 정책 변수가 될 수 있다.

결국 미국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미국 이민 정책의 향방을 넘어 한국과 미국 사이의 인적 이동, 교포 사회의 안정성, 나아가 국내 인구·이민 정책 논의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판결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그것이 가져올 변화는 단순한 미국 내부 이슈를 넘어 국제적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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