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자궁서 태어난 미래인들…정지돈 소설 '브레이브 뉴 휴먼'

일반인·체외인 차별 일상화된 근미래 한국…가족의 의미 물어

결혼정보신문 승인 2024.05.04 01:51 의견 0

X
[은행나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공 자궁이 상용화돼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일

반인'들과 인공적으로 태어난 '체외인'들이 공존하는 근미래의 한국.

일반인과 체외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동일하다. 육안으로는 두 집단을 구별할 수 없기에 정부는 성인이 된 체외인의 오른쪽 손목에 식별할 수 있는 생체 바코드를 새기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체외인에게는 유전적 부모가 존재하지만, 기증받은 생식세포를 추적해 부모를 찾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체외인의 부모는 곧 국가이고, 양육과 교육도 정부가 전담한다.

국가에서 공동양육으로 길러진 뒤 사회로 방출되는 이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제한된 권리만 누릴 수 있을 뿐이지만, 규율을 벗어나지 않는 한 적당히 만족하며 살아갈 수는 있다. 또한 극히 드물긴 하지만 일반인으로 승격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승격제도로 인해 체외인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나뉘고, 자기들끼리도 서로에 대한 차별을 내면화한다.

정지돈의 신작 장편 '브레이브 뉴 휴먼'은 난임과 저출산의 시대에 '인공 자궁'이라는 충분히 있을 법한 소재를 통해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가족'이라는 제도의 재정의를 모색한 소설이다.

"인공적으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왜 필요한가.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제품 아닌가."

사람들은 인간 존재의 본연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혼란에 빠지고, 작가는 그에 대한 대답을 '가족'에서 찾고자 한다.

이 소설은 이미 전작 단편 '언리얼 퓨처: 22세기 서울'과 초단편 '가족의 방문'에서 인공 자궁에서 인간이 탄생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작가가 비슷한 설정으로 써낸 세 번째 작품이다.

제목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주요 설정을 이어받아 비틀고 오마주한 작품이다.

헉슬리 역시 그랬듯이 기계에서 인간이 탄생하는 미래를 보통 디스토피아로 그린 소설들이 대부분이지만, 정지돈의 '브레이브 뉴 휴먼'은 그렇지는 않다.

작가는 오히려 인공 생식이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킨다'는 페미니즘 이론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생각('성의 변증법'·1970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소설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파이어스톤의 글에서 용기를 얻었다. 인공 자궁을 비난하거나 끔찍하게 여기지 않고 가능성으로 상상하는 동지를 처음 만난 것이다. 파이어스톤의 주장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격받고 오해됐지만 그의 선견지명은 지금도 영감을 준다."

은행나무. 204쪽.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 ⓒ 결혼정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