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사람의 혼례가 이뤄졌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신랑 신부가 잘 살 수 있도록 우렁찬 박수로 축하해주세요."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의집 소화당.
김기진 집례(執禮·의식을 할 때 순서를 적은 글을 읽으며 절차를 집행하는 사람)의 말이 끝나자 전통 혼례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가 하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익숙지 않은 복식과 절차, 잔뜩 긴장했던 두 사람은 그제야 옅은 미소를 띠었다.
세 아이의 부모로 살아온 박효심·이일덕 씨 부부의 늦은 결혼식. 가족과 지인 10여 명 앞에서 다시금 백년가약을 약속한 부부는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박효심·이일덕 씨 부부는 남한이라는 새로운 터전에 정착하는 탈북민이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두 사람은 2018년 처음 만나 이듬해 가족의 연을 맺었다. 2011년 북한 땅을 떠나 중국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박효심 씨가 한국 땅을 밟았던 그 해였다.
그를 보듬어준 건 2004년 먼저 한국 땅에 정착한 이 씨. 서로 '사람의 됨됨이가 마음에 들었다'는 연상연하 커플은 함께 가정을 이루며 세 아이의 부모가 됐다.
그러나 넉넉지 않은 형편에 2021년 혼인신고만 올렸을 뿐 결혼식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런 두 사람이 늦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건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도움 덕분이었다.
경제적 부담으로 결혼과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게 전통 혼례와 돌잔치를 무료로 지원해주는 사업의 첫 대상이 바로 박씨 부부다.
박효심 씨는 전통 혼례를 신청하며 "2018년 봄 처음 한국 땅을 밟아 새로운 희망을 안고 살아왔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결혼식은 사치로 여겨왔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아이들에게 '새터민 가정'이 아닌 한국의 전통 혼례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당당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평일 낮에 열린 결혼식이라 하객은 많지 않았지만, 참석자들은 진심으로 두 사람을 축복했다. 4살 큰아들도 결혼식에 참석해 엄마 아빠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일덕 씨는 "북한에서는 보통 여자는 한복, 남자는 양복을 입고 집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며 "결혼식은 안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셋 낳고 이렇게 하게 됐다"며 잘 살겠다고 다짐했다.
문화재청과 재단은 11월 4일까지 매주 행사할 예정이다.
전통 혼례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다문화가정, 국가 유공자, 탈북자,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총 60차례, 돌잔치는 한부모 가정을 중심으로 30차례 열린다.
전통 혼례와 돌잔치 모두 행사 전반과 간단한 음식, 사진·영상 등을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다.
문화재청과 재단은 다음 달 12일까지 신청을 받아 지원 대상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이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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