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못 받은 양육비, 자녀 성인 되고 10년 지나면 청구 불가"

성인 된 때부터 소멸시효 계산 시작…23년 지난 양육비 청구 기각

'청구 안하면 소멸시효 진행 없다' 기존 판례 변경…대법관 5명은 반대

결혼정보신문 승인 2024.07.18 18:55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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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받지 못한 미성년 자녀 양육비를 나중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자녀가 성인이 된 때로부터 10년 동안만 유효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8일 A(87)씨가 전 남편 B(85)씨를 상대로 낸 양육비 청구 사건에서 원심의 청구기각 결정을 확정하면서 이같이 설시했다.

대법원은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미성년이어서 양육 의무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진행하지 않고, 자녀가 성년이 돼 양육 의무가 종료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우선 자녀가 미성년인 기간에는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의 범위와 내용이 확정되지 않는 이상 그 권리의 성질상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했다.

일반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사라지는데, 이를 소멸시효라고 한다. 대법원은 자녀가 미성년인 기간에는 양육비 청구권이 단순한 금전채권이 아니라 '양육 의무'의 이행을 구할 권리이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고 봤다.

그런데 자녀가 성년이 되면 양육 의무가 더는 발생하지 않고 지출한 양육비 규모도 확정된다. 대법원은 "(이혼한) 부부 사이에는 어느 일방이 과거에 자녀 양육을 위해 지출한 비용을 서로 정산해야 하는 관계만이 남게 된다"며 "친족법상 신분으로부터 독립해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일반 채권과 같이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언제까지나 과거 양육비를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평생 불안정한 상태를 감수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양육비 청구권을 행사한 경우 오히려 소멸시효의 적용을 받게 돼 행사를 안 한 경우보다 불리하게 된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현행법에 따라 양육비는 미성년 자녀가 만 19세 성인이 될 때까지 지급해야 하고,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면 자녀가 성인이 된 후라도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

2011년에 나온 종전 대법원 판례는 양육비의 경우 당사자 간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이 생기기 전에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봤다.

자녀가 성인이 됐더라도 사전에 양육비 지급을 협의한 적이 없으면 언제든 법적으로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번 사건 당사자인 A씨와 B씨는 1971년 혼인하고 1973년에 아들을 낳았다. 부부는 이듬해부터 별거했고 1984년에 정식으로 이혼했다. 아들의 양육은 A씨가 1974년부터 19년간 전담했다.

A씨는 아들이 성인이 된 때로부터 23년이 흐른 2016년 B씨를 상대로 과거 양육비 약 1억2천만원을 청구했고 1심에서 6천만원이 인정됐다.

그러나 항고심을 심리한 수원지법은 언제까지나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종전 대법원 판례를 어기고 A씨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대법원은 2018년 12월 이번 사건을 접수하고 6년 가까이 심리한 끝에 이날 전원합의체를 통해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김선수·이동원·이흥구·오석준·서경환·엄상필 대법관이 다수 의견에 동의했다.

노정희·김상환·노태악·오경미·신숙희 대법관은 다수 의견과 달리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협의 또는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성립하기 전에는 친족관계에 따라 인정되는 추상적 청구권 내지 법적 지위의 성질을 가지므로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가 없다"며 반대 의견을 남겼다.

권영준 대법관은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양육자가 미성년 자녀 부양, 즉 양육에 따른 비용을 지출한 때부터 진행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자녀의 복리와 법적 안정성이라는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 및 구체적 타당성을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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