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에선 자녀·노인·장애인 돌봄 폭넓게 인정…직업훈련·학업 크레딧도
"국민연금 사각지대 광범위…크레딧 강화해 기여·수급권 축적 이력 늘려야"
정부가 국민연금 출산·군복무 크레딧을 확대하는 안을 내놓은 가운데 해외 주요국처럼 다양한 크레딧을 추가 도입해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크레딧은 정부가 개인의 적정 연금을 위해 지원하는 일종의 '보험료 면제' 제도로서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활동이나 불가피한 사유로 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기간을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거나 감액된 소득을 상향 인정해준다. 한국은 출산·군복무·실업크레딧을 지원하고 있다.
8일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은 대체로 한국에 비해 종류가 다양한 연금 크레딧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급 기준도 관대했다.
특히 캐나다·독일·프랑스·스웨덴 등 다수 국가는 양육크레딧을 시행하고 있다. 자녀 양육으로 인한 소득의 상실이나 감소에 대해 보상한다는 목적이다.
스웨덴은 최소 5년 동안 연금 관련 소득이 있었거나 장애연금 크레딧을 수급했던 부모들에게 자녀 출생 후 첫 4년 동안의 크레딧을 인정한다.
독일은 자녀당 3년의 크레딧 기간을 한도 없이 인정해준다. 프랑스는 기본 2년의 크레딧에 자산 조건, 자녀의 연령 조건, 특정 가족급여 수급 여부에 따라 '추가 아동양육 크레딧'을 부여한다.
자녀양육 외 노인이나 장애인 돌봄 크레딧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돌봄자의 노후빈곤을 완화하자는 것인데, 독일의 경우 돌봄으로 인해 1주일에 30시간 이상 근로활동을 할 수 없을 경우 등을 조건으로 한다.
크레딧 인정 소득은 노인·장애인의 수발 정도에 따라 차등 구성돼 있으며, 제한 없이 돌봄 전 기간을 인정해줌으로써 무급 돌봄노동을 크게 인정하고 있다.
주요국은 이밖에도 청년 실업률을 고려해 직업훈련 기간 크레딧을 인정해준다거나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크레딧도 운영하고 있다.
또 실업급여뿐 아니라 질병급여 등 다양한 급여 수급 기간에 대해 크레딧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도 파악됐다.
같은 유형의 크레딧이어도 우리나라보다 폭넓게 인정해주는 '관대한' 지급 기준과 높은 보장성도 눈에 띈다. 일례로 한국은 현재 군복무 기간 6개월까지 크레딧을 인정해주고 있지만 스웨덴·노르웨이 등은 복무 전체 기간에 대해 인정해주고 있다. 독일 또한 군복무를 포함한 사회봉사 기간에 대해 최대 23개월까지 크레딧을 부여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례를 참고,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가입 기간을 늘리기 위해 크레딧을 추가 도입하거나 대상을 확대하자고 제언한다.
국민연금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국민연금제도의 사각지대 현황과 대응방안' 보고서는 "많은 국가가 우리나라에 비해 다양하고 관대한 크레딧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사각지대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크레딧 강화를 통해 기여·수급권 축적 이력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양육크레딧 도입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30대 이후 사각지대의 다수는 여성이고 특히 국민연금에서 원천 배제된 적용제외자의 62%는 여성 위주의 무소득 배우자였다"며 "양육크레딧은 이들 여성의 경력단절과 기여 공백을 채워 노후 소득을 보장할 가장 직접적·효과적 방법"이라고 평했다.
연구원의 다른 보고서인 '국민연금제도 내 청년층의 다중불리 경험과 지원방안 검토'에서 전문가들은 "학업이나 구직활동 등과 같은 생애 과업을 이유로 노동시장 진입은 물론 국민연금 적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층에게 새로운 크레딧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이를 위해 독일과 영국 등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 크레딧' 도입을 제안하며 "직업훈련 크레딧은 인턴십과 견습 과정을 포함해 청년기에 발생하는 모든 근로 경험에 대해 기여 이력을 쌓게 한다는 점에서 청년의 노동시장과 국민연금을 유용하게 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4일 내놓은 국민연금 개혁안에는 기존에 둘째 아이부터 인정되던 출산 크레딧을 첫째 아이까지로 확대하는 내용과 현행 6개월 인정됐던 군복무 크레딧을 복무 기간 전체 대상으로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이미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에서 크레딧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해당 안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수의 전문가가 수긍하지만, 일각에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해외 주요국 사례와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할 때 첫째 아이에 대해 1년 정도 (크레딧을) 주는 것 갖고는 여성들의 연금 수급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므로 양육으로 인한 불이익을 사회적으로 보상해 준다는 차원에서 출산 이후 충분한 기간 양육 크레딧을 추가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진숙 의원은 "여성의 경력단절, 청년 실업 등 다양한 사회문제로 인한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가 심각한데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기존 크레딧 제도를 확대하겠다는 소극적인 입장"이라며 "직업훈련, 자녀돌봄 등 신규 크레딧 제도 도입을 검토해 국가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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