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들이 여성의 경제 참여 확대와 돌봄체계 혁신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모았다. 지난 8월 12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APEC 여성경제회의(WEF, Women and the Economy Forum)에서 21개 회원경제의 고위급 인사들은 만장일치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번 성명은 2019년 채택된 ‘라세레나 로드맵(2019–2030)’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올해 APEC 정상회의 주제인 ‘연결·혁신·번영’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실천 계획을 담았다.

공동성명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경제참여와 리더십 확대다. 회원국들은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고, 공공·민간 부문에서 여성 리더를 더 많이 발굴하며, 경력단절 여성이 다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와 인공지능(AI), 디지털 산업 등 미래 성장동력 산업에서 여성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 확대가 명시됐다. 이를 위해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지원, 육아휴직 제도의 개선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또한 여성 창업을 지원하는 금융 접근성 개선과 멘토링 네트워크 구축도 중요한 과제로 포함됐다. 회원국들은 창업 지원금, 저금리 대출, 투자 유치 기회 확대 등을 통해 여성 기업인의 성장을 돕고, 이를 통해 국가 경쟁력 전반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회의에서는 “여성의 경제 참여가 늘어날수록 생산성과 혁신성이 동반 상승한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공유되며, 성평등한 경제 구조가 곧 지속가능한 성장의 필수조건임이 재차 확인됐다.

두 번째 축은 양질의 돌봄체계 구축이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 저출산이 동시에 진행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돌봄 문제는 경제 성장과 직결된 과제로 부상했다. 공동성명은 국가 차원의 돌봄 인프라 투자 확대, 돌봄 서비스 종사자의 처우 개선, 그리고 디지털·AI 기술을 활용한 돌봄 서비스 혁신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원격 모니터링, 맞춤형 케어 앱, AI 기반 건강관리 시스템 등을 도입해 돌봄 품질을 높이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일·생활 균형을 위한 정책 개선도 포함됐다. 유연근무제 확대, 직장 내 보육시설 확충, 공공 돌봄 서비스의 접근성 향상 등이 대표적인 방안이다. 회원국들은 이러한 제도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돌봄 참여를 늘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돌봄은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눌 과제”라는 점이 성명문에 명확히 명시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회원국 대표단은 돌봄체계 혁신이 곧 여성 경제참여 확대의 기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력단절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육아와 가족 돌봄 부담을 줄여야만 더 많은 여성이 장기간 노동시장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돌봄 인프라 확충은 고령 인구의 생활 질 향상에도 기여해 사회 전체의 안정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됐다.

이번 공동성명은 회원국들의 정책 이행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각국은 내년까지 구체적인 이행 계획과 성과 지표를 마련해 WEF 차원에서 점검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선언이 단순한 원칙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장관 직무대행 차관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고 돌봄체계를 강화하는 일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인구 위기와 성장 둔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라며 “이번 공동성명을 계기로 APEC 내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 포용적 성장의 모범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APEC-WEF 공동성명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직면한 경제·사회적 도전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성의 잠재력을 경제 전반에 온전히 반영하고, 모두를 위한 돌봄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첫걸음임을 국제사회가 함께 확인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