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가 금융·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단순한 인구 구조 변화에 그치지 않고, 실질금리 하락과 금융기관 건전성 악화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WEA)**에서 한국은행은 고령화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공식 발표했다. 한은에 따르면 1991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의 실질금리는 약 1.4%포인트 하락해 사실상 제로 수준에 도달했다. 기대수명 증가로 가계가 은퇴 대비 저축을 늘리면서 시중 자금이 과잉 공급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저금리가 투자 유인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통화정책 여력마저 제약한다는 점이다. 금리가 낮으면 한국은행이 경기 침체 시 추가 인하를 통한 부양책을 쓰기 어렵고, 이는 재정 정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금융 건전성이다. 한국은행은 OECD 28개국의 7천여 개 은행을 분석한 결과, 노년 부양비가 1%포인트 증가할 때 은행 BIS 자기자본비율이 평균 0.64%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은행은 수익성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위험자산에 투자하게 되고, 그만큼 위기 취약성은 커진다는 의미다. 특히 중소형 은행이나 주택담보대출 의존도가 높은 금융기관은 충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단기 경기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인구 변화에서 비롯된 만큼 대응이 더욱 어렵다고 지적한다. 고령화는 경제성장 둔화, 세수 감소, 복지 지출 증대라는 ‘삼중고’를 불러오며 금융 시스템 불안정까지 키우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어, 문제의 파급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한은은 이번 대회에서 대응 방향도 제시했다. ▲생산성 향상과 노동공급 확대 ▲정년 연장과 출산율 제고 정책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 강화 ▲고령층 자산 유동화 지원 등을 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금리·재정 조정만으로는 고령화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고령화 문제는 더 이상 미래 과제가 아닌 현재 진행형 위기다. 세계경제학자대회 발표는 고령화가 단순한 사회 문제를 넘어 실질금리 하락과 금융 건전성 저하라는 경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요인임을 확인시켰다. 이제 정부와 금융당국이 얼마나 빠르고 구조적인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향방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