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작가 과달루페 네텔 장편소설…지난해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
프랑스에서 유학한 뒤 고국 멕시코로 돌아와 아무 부담 없이 연애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라우라에게 결혼과 출산은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다.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애인의 유혹에 굴복할 뻔한 순간 그녀는 즉시 병원을 찾아 임신 가능성을 봉쇄해버린다.
출산에 관해 라우라와 같은 신념을 공유했던 친구 알리나는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 뒤 난임시술을 받으면서까지 아기를 원하게 된다.
멕시코의 여성 작가 과달루페 네텔의 장편소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는 주인공 라우라의 눈을 통해 바라본 현대 여성들의 모성과 출산, 양육, 돌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라우라는 자기 자신과 친구 알리나를 포함해 각기 다른 다섯 여성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라우라의 옆집에 사는 도리스는 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아들을 홀로 양육하느라 혼이 쏙 빠져 지낸다. 그녀의 아들 니콜라스는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부터 3년 가까이 난동을 부리며 엄마의 속을 헤집어 놓고, 라우라는 그런 니콜라스에게 묘한 애착을 느낀다.
반면에 라우라의 엄마에게 있어 자식은 "인생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조건 없는 사랑으로 채워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존재다. 하지만 난관수술 사실을 공개하며 "영원히" 아기를 낳지 않을 것이라는 딸의 선언에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지나간 삶과 경험을 반추하고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자식을 갖지 않기로 결정한 거 나는 이해한다."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 속엔 라우라의 절친 알리나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낳은, 뇌에 심각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 이네스를 정성껏 돌보는 보모 마를레네와 같은 삶도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엄마 되기'에 관한 여성들의 다양한 선택과 그에 따른 상이한 결과들을 보여주지만, 출산과 비(非)출산 사이에서 어떤 게 바람직하다는 식의 성급한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그 대신 작가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의지와 작고 연약한 존재에 대한 돌봄의 중요성, 현대의 모성(母性)을 대하는 의료체계에 깔린 남성중심주의와 권위주의 등 오늘날 여성의 몸과 출산, 양육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정교하게 펼쳐 보여준다.
모성의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속성을 해부하는 작가의 시선은 출산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와 상관 없이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
이 작품의 원제는 스페인어로 '외동딸'이라는 뜻의 'La hija unica'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소설 속 알리나의 딸 이름을 강조해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로 했다.
'이네스'는 17세기 스페인 식민지 남미의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작가가 된 페미니스트 시인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다.
알리나는 이 역사적 위인의 이름을 딸에게 부적처럼 붙여주고, 태어나자마자 죽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경고에도 이네스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부모와 라우라에게 크나큰 사랑과 기쁨을 준다.
저출생이 피할 수 없는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되어버린 시대에 출산과 비출산, 생명과 돌봄, 연약한 존재에 대한 사랑에 관한 묵직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영어판 '스틸 본'(Still Born)은 지난해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의 국제 부문(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바람북스. 최이슬기 옮김.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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