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7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9·7 부동산대책)’은 겉으로는 공급 물량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시장 안팎에서는 “전세 제도를 직접 폐지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전세 축소를 예고한 대책”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공공택지 공급 확대, 재건축·재개발 절차 간소화, 민간 참여 확대 등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불안 해소가 목표다. 그러나 더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임대차 시장을 겨냥한 보완책이다. 월세 세액공제 확대, 보증금 반환 보증 강화, 월세 대출 지원 확대 등이 그것이다. 겉으로는 임차인 보호와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세에서 월세로 중심축을 옮기려는 흐름이 뚜렷하다.

전세제도는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 방식이다. 임차인은 목돈을 맡기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고, 집주인은 보증금을 운용하며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금리·고금리 변동, 임대차 3법 시행, 집값 급등이 맞물리면서 전세의 장점은 희미해졌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는 전세 제도의 안전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제 정부는 월세 제도를 제도권 안에서 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지로 만들고자 한다. 월세 세액공제를 넓히고, 보증금 반환 보증을 강화하며, 월세 대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임차인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이는 전세가 갖고 있던 ‘목돈 한 번에 마련’이라는 장벽을 낮추고, 보다 지속 가능한 임대 구조로의 전환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전환이라고 본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는 장점이 뚜렷하지만, 현재의 구조적 문제를 감안할 때 월세 중심 체제로 옮겨가는 건 불가피하다”며 “다만 전세 의존도가 높은 서민층의 주거 불안을 완화할 장치가 병행돼야 정책 전환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감지된다. 전세 매물은 줄고, 월세 거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목돈 마련이 어려운 2030세대는 월세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러한 세대의 주거 선택과 맞물려 월세 확산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9·7 대책은 단순히 주택을 얼마나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넘어, 한국 사회 주거 문화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호탄일 수 있다. 전세는 당장 사라지지 않겠지만, ‘안정적 거주 방식’이라는 오랜 상징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사회적 불안으로 번지지 않도록 세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대책은 단순한 공급 정책이 아니라,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의 시작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