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생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난임 치료제를 많이 팔았다는 이유로 약가를 인하하는 정부의 **‘사용량-약가 연동제’**가 오히려 약품 공급 부족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의 핵심 수단인 난임 치료 지원이 약가 정책과 충돌하면서, 출산 장려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최근 손해보험협회에서 “출산·육아 지원은 금융이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로 다음 날, 국회와 의료계에서는 “정작 정부는 난임 치료 환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의원은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난임 지원 예산을 확대하면서도, 난임약 판매가 늘었다는 이유로 약가를 깎아버렸다”며 “그 결과 제약사들이 손해를 감수할 수 없어 공급을 줄이게 되고, 난임부부들이 약을 제때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시장에서는 일부 난임 치료제의 공급 중단 및 품절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난임 시술 과정에서 사용되는 수입 약제인 퍼고베리스 주사제는 수요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건강보험 상한 약가가 인하되면서 공급 차질이 발생했다. 제약업계는 “정부가 수입 단가와 생산비 인상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판매량이 늘었다는 이유로 가격을 내리면, 국내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사용량-약가 연동제’는 약품이 많이 팔릴수록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약가를 낮추는 제도다. 하지만 난임 치료제처럼 해외 원료에 의존하고 생산량이 제한된 품목의 경우, 약가 인하가 곧바로 공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수입사와 해외 본사 간 협상이 복잡한 품목일수록, 낮아진 단가로는 국내 시장 공급이 매력적이지 않아 **“약이 없어서 치료를 미룰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김 의원은 “국가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난임 시술 지원을 늘리겠다고 하면서, 같은 정부 내에서 약가를 깎아버리는 건 정책의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난임치료제는 단순한 의약품이 아니라 국가 인구정책의 필수 자원인 만큼, 사용량-약가 연동제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에도 최근 2년간 난임치료제 관련 공급 부족 신고가 여러 차례 접수됐다. 글로벌 원료 수급 불안, 유럽·미국 시장 우선 배정, 환율 변동 등으로 공급 자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약가 인하까지 겹치며 국내 시장의 공급 유인이 줄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단기적 재정 절감을 위해 약가를 내리면, 장기적으로는 치료 공백과 환자 피해가 커지는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시대에 난임 치료의 접근성을 높이려면 단순한 지원금 확대가 아니라 치료제 접근성·공급 안정성 보장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난임 시술은 시기별 투약 일정이 촘촘하게 맞물려 있어, 약 한 종류라도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초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로 번지는 지금, 정부의 약가 정책은 단순한 제약산업 이슈가 아니라 출산 정책의 지속성을 좌우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복지 확대와 재정 효율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아이를 원해도 약이 없어 기다려야 하는 일은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와 국회의 공통된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