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이후에도 직장 생활이 단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할수록 여성의 출산 의향이 뚜렷하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시 말해, ‘출산을 해도 내 커리어는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여성들은 새로운 생명을 맞을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출산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여성의 실제 고민이 여전히 깊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은지 선임연구원은 4일 서울 LSW컨벤션에서 열린 ‘2025 패널조사 학술대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2024년 국내 세대와 성별(GGS Korea) 예비 조사 자료 중 19∼44세 남녀 1천59명을 대상으로 출산 의향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 결과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여성에게 출산과 노동이 여전히 함께 가기 어렵다’는 구조적 인식이 출산 의향을 직접적으로 낮추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경우 출산 후에도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는 집단은 출산 의향이 뚜렷하게 높았지만, 노동 지속이 어렵다고 전망하는 여성은 출산 의향이 가장 낮았다. 특히 무자녀 여성, 중·저소득층 여성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경제적 여력이 충분하지 않고 경력 단절 위험이 큰 집단일수록, 출산이 곧 ‘생계와 성장 경로의 중단’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정책적으로 주목되는 부분은 이 인식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직장 내 육아휴직 복귀의 불확실성, 승진과 보직에서의 불이익,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 몰리는 현실 등이 출산에 대한 결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출산을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원금 몇 십만 원’이 아니라, 출산 이후에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는 안정된 사회적 기반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반면 남성은 전반적으로 여성보다 출산 의향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출산 후 노동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출산 의향에 미치는 영향도 비교적 적었다. 남성의 ‘노동 지속성’이 출산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현실이 드러난 것으로, 성별 간 노동·돌봄 구조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출산이 남성의 경력·노동 환경을 흔들지 않기 때문에 출산 의사와 커리어 지속 여부가 크게 연동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한국 사회가 왜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출산은 여성 개인의 선택이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제도의 결과라는 점이다. “출산하면 경력이 끊긴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출산율 반등은 요원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은지 연구원은 발표에서 “출산 후에도 경력 단절 없이 노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환경이 조성돼야 실질적인 출산 의향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육아휴직 제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귀 후의 확실한 자리’이며, 출산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믿음이라는 설명이다.
출산과 일의 양립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출산율을 이야기하는 한, 경력 단절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결심은 누군가의 용기가 아니라, 사회가 주는 안전망의 크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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