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공공장소 히잡 착용이 법으로 의무화된 이란에서, 고위층 인사의 딸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노출이 있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린 영상이 퍼지며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여성들이 구금·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정권 핵심층 자녀의 파격적인 결혼식 장면은 이란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과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이란계 위성매체 이란 인터내셔널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논란의 주인공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정치 고문이자 전 국가안보최고위원회(SNSC) 사무총장인 알리 샴카니 소장의 딸이다. 최근 온라인에 확산된 영상 속에서 신부는 어깨가 드러나고 깊게 파인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히잡 없이 하객들과 함께 춤을 추거나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결혼식은 수도 테헤란의 한 고급 행사장에서 치러졌으며, 이란 내 상류층과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상이 공개되자, 이란 국민들은 즉각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SNS에는 “일반 여성은 머리카락 몇 가닥만 보여도 체포되는데, 고위층 자녀는 법 위에 군림하냐”, “그들의 히잡은 서민만을 위한 족쇄일 뿐”이라는 댓글이 쇄도했다. 특히 지난해 ‘히잡 미착용’으로 체포된 뒤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떠올리며, “아미니는 죽었는데, 그들은 춤춘다”는 비판적 문구가 해시태그로 확산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영상의 진위와 행사 규모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지 언론은 해당 영상이 해외로 유출되자 정부가 온라인 검열을 강화하고,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는 등 여론 통제에 나섰다고 전했다. 일부 보수 성향 인사들은 “가족의 사적 행사”라고 두둔했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공공의 도덕과 종교적 기준을 일반 국민에게만 강요하는 위선의 극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히잡 단속을 담당하는 ‘도덕 경찰’을 부활시키는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권력층만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는 나라”라는 냉소를 더욱 확산시켰다. 현지 인권단체들은 이번 논란이 단순한 결혼식 해프닝이 아니라, 이란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여성 억압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지적했다.

결혼식 영상은 여전히 SNS에서 확산 중이며, 당국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이중잣대’, ‘#히잡_자유’ 등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그들의 드레스 한 벌이 우리 사회의 진실을 벗겨냈다”고 썼다. 이번 파문은 이란 여성 인권과 자유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비판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