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순간의 의료 처치는 만족스러웠지만, 그 이후는 방치에 가까웠다.”

지난해 6월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서 첫 아이를 출산한 여성의 증언이다. 그는 분만 직후 침대 시트조차 제때 갈아주지 않았고, 충분한 설명이나 사후 관리도 받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서야 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러한 경험이 결코 예외가 아니라고 전했다. 실제로 토요일 점심에 입원해 일요일 아침 출산한 뒤 당일 퇴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불만의 화살은 영국의 무료 공공의료 제도인 국민보건서비스(NHS)로 향하고 있다. 출산 의료를 포함한 전반적인 서비스 품질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다.

영국 의회 의원연맹이 2024년 공개한 ‘출산 트라우마’ 보고서에 따르면 1300명 이상의 산모와 의료진 증언을 분석한 결과, 충분한 설명 없는 긴급 제왕절개, 통증 조절 실패, 출산 후 정신건강 지원 부재 등 구조적 문제가 광범위하게 확인됐다. 매년 약 3만 명의 여성이 출산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웨스 스트리팅 영국 보건장관은 지난해 6월 산부인과·신생아 진료 전반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문제 사례가 반복됐던 병원을 중심으로 진료 체계를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산부인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료 대기 시간 장기화는 일상이 됐고, 2022년에는 12만 명 이상이 치료를 기다리다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핵심 원인은 만성적인 재정 부족이다.

NHS는 1948년 출범 이후 세금 재원을 바탕으로 소득·국적과 무관한 무료 의료를 제공하며 ‘영국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 속에서 의료 예산 증가율은 급격히 둔화됐다. 1955~2009년 연평균 4.2%에 달하던 실질 의료비 증가율은 2010년 이후 코로나19 이전까지 이를 밑돌았다.

예산 압박은 곧바로 현장에 전가됐다. 인력 충원은 줄고 임금은 억제되면서 의료진의 피로와 사기 저하가 누적됐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전국적 의료진 파업도 같은 맥락이다. 런던대학교(UCL)의 노라 콜턴 교수는 “NHS는 역사상 가장 운영이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며 “인력 부족과 저임금, 노후화된 의료 인프라가 동시에 의료의 질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인식도 급변했다. 너필드 트러스트 조사에 따르면 2007년 NHS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51%였지만, 2024년에는 21%로 급락했다. 반대로 불만족 응답은 같은 기간 30%에서 59%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NHS 대신 민간 병원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 장벽은 높다. 런던의 민간 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산하려면 최소 1만 파운드(약 2000만 원)가 필요해, 보장 범위가 큰 민간보험이 없으면 이용이 쉽지 않다.

집권 노동당은 NHS 개혁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며 일부 기관의 정부 직할 전환, 디지털화와 효율화를 통한 향후 10년간의 단계적 의료 질 개선을 약속했다. 의료 지출 확대도 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콜턴 교수는 “정부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민간 자본을 포함한 포괄적인 투자 구조 없이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저출산·고령화로 의료 재정 부담이 커지는 현실은 선진국 공통의 과제라며, 영국 NHS 개혁은 이 구조적 도전에 대한 하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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