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저출생 원인 진단하고 해법 모색
(서울=연합뉴스)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
처우에 불만이 많거나 성과가 저조한 부하를 타박하는 상사의 이런 대사를 드라마나 소설에서 한 번쯤 접해봤을 법하다. 이런 판에 박힌 경고는 1960년대 후반이나 1970년대 초에 출생한 직장인들에게 잘 먹혔을 수 있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1970년대 이후 인구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연간 출생아 수는 1971년에 102만여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노동력 공급이 절정에 달한 시기다. 생산의 3대 요건 중 노동의 가치가 매우 낮게 설정된 세대이니 직장에 대한 충성이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출생아 수가 56만명에 조금 못 미친 2001년생 Z세대 신입사원에게 꼰대 상사가 비슷한 발언을 하면 신입사원은 조용히 사직서를 내밀며 '여기 말고도 일할 곳은 많아요'라고 마음속으로 되받아칠지도 모른다.
시장은 이런 방향으로 더 나가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을 간신히 넘겨 1971년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됐다. 이제 자본이 노동보다 우위에 서는 시대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2007년 출간한 공저 '88만원 세대'에서 세대 간 경제적 불균형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 우석훈은 신간 '천만국가'(레디앙)에서 고도 성장기 한국은 노동에 비해 자본이 귀한 사회였고 자본이나 장비가 노동이나 사람보다 우선시 됐지만 이런 질서가 계속 통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다.
최근 재택근무가 확산하고 일부 기업이 주 4일제 근무를 검토하거나 도입하려는 것은 기업의 고급 인력 쟁탈전은 가속화하고 시장이 자본 희소 사회에서 노동 희소 사회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책은 해석한다.
이면에는 인구 문제가 있다. 저자는 출생아 감소 추이 등에 비춰볼 때 미래 한국의 인구가 현재의 5분이 1 수준인 1천만명 정도까지 줄어들어 국가 소멸을 우려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산부인과나 초등학교는 줄고 사교육비는 증가하는 등 저출산을 촉진하는 경제적 변화가 더욱 강력해질 가능성이 크며, 시간이 흐를수록 출생아 수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출생아는 20년 후에 10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 책은 문명 단위로 볼 때 한국이 재생산에 실패했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누구도 저출생이 내 문제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경제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모두의 문제'이지만 저출생의 직접 당사자인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누구도 직접 당사자가 아닌 특이한 상황이다.
책은 저출생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차별과 혐오에 주목한다. 미래의 노동력인 출생아가 감소하고 있으니 어린이가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하지만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버릇없는 아이를 두둔하는 어머니를 멸시하는 '맘×'과 같은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초등생들은 저소득층을 'XX거지'로 표현하며 비하하기도 한다. 사람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사회적 포용력이 감소하는 가운데 자녀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것이란 기대감이 감소하고 이 역시 출산 포기를 선택하는 동기가 된다고 책은 분석한다.
저자는 저소득층에게 10억원씩 일정 기간 출산지원금을 주면 출산 패턴이 확실하게 바뀌겠지만 출생아 수가 10만명이라고 해도 연간 100조원이 소요된다고 가정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그 정도 돈을 지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하며 우선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한 해 100만 명씩 태어나던 시절의 사람들이다. (중략) 선진국 경제의 기본은 사람이 귀한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중략) 알바들이 행복하고, 그들도 걱정 없이 아이를 낳는 시대, 그 정도는 유럽에서 이미 50년 전에 만든 사회다. 우리가 지금 그걸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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