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 침해·세금 민원에 지자체도 '전전긍긍'
철거 비용 지원하고 매입해 새단장…부랴부랴 대책 마련
(전국종합=연합뉴스) 사람이 떠난 자리엔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빈집은 도시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치안과 인근 주민의 재산권 침해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시킨다.
저출생과 지방소멸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농어촌뿐만 아니라 도시도 더는 빈집 문제에서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지자체마다 골칫거리로 떠오르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인구감소·고령화·신축 선호에 도심 속 버려진 빈집
"마을 곳곳에 언제부터 비었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 집들이 남아 있는데, 날이 어두워지면 무서워 일부러 길을 돌아갑니다."
급경사지에 있는 부산 동구 수정동의 삼보연립과 일대 주택을 바라보던 30대 정모씨는 24일 주거 환경을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밀안전진단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삼보연립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는 출입문이 잠긴 채 텅 빈 건물이 많았다.
방치된 주택들은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한때 아이들이 뛰어놀고 사람 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이곳에는 이제 고요와 쓸쓸함이 남았다.
인천에서는 미추홀구 용현동 왕복 6차선 도로 옆에 빈집 32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인근에 대형마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있지만 이곳만 시간이 그대로 멈춘 모습이다.
집 앞은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나무로 가로막혔고 집안에는 사용하고 버린 이불과 베개 등 가재도구가 널브러져 있다.
인근에서 대학에 다니는 양모씨는 현장을 바라보며 "입학했을 때부터 빈집들이 이렇게 방치돼 있었다"며 "주변에 큰 건물이 많아 다행이지만 어두운 밤에는 혹시 몰라 빠르게 지나다닌다"고 말했다.
최근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로 지방 곳곳에 빈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신축 주거지 선호 현상까지 겹친 대도시에도 빈집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지자체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특·광역시 가운데 부산이 5천431채로 빈집이 가장 많다. 인천은 3천945채, 대전은 3천873채, 대구는 3천546채를 기록했다.
물론 도농 복합지역인 전북(1만3천687채), 경남(1만613채), 경북(1만406채), 전남(1만399채) 등은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 걸림돌은 재산권 침해…철거후 세금 부담 증가 '모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빈집은 '감염병'처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해 해당 지자체들의 애를 먹인다.
현재 장기간 방치된 빈집은 주변 경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범죄 장소로도 악용돼 지역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인적이 드물다 보니 마을 일대가 우범지대로 전락해 범죄의 온상으로 자주 지목된다.
방치된 건물은 여전히 마을에 남아있는 이웃을 위협하기도 한다.
관리되지 않아 버려진 집에서 풍기는 악취 등 위생 문제와 집중호우로 인한 붕괴 위험은 주민들의 정주 여건을 악화시킨다.
현장에서는 빈집을 철거해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 해도 각종 민원과 재산권 침해 등으로 인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지자체에서 빈집을 정비하려 해도 소유자의 자발적 동의가 없다면 실제 철거하기 어렵다.
심지어 빈집을 철거하면 세금 부담이 불어나 집주인이 철거를 꺼리기도 한다.
빈집을 철거하면 건물은 없어지고 나대지만 남는데, 현행 지방세법상 나대지 상태 토지의 재산세는 주택이었을 때의 1.5배 수준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집주인이 자발적으로 빈집을 철거하겠다고 결심했는데도, 막상 세금이 늘어나는 모순이 생기다 보니 지자체 입장에서도 설득하기 쉽지 않다"며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빈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문제는 심각한 데 반해 제도적 뒷받침은 미비하다는 점을 느낀다"고 말했다.
◇ 철거비 지원에 빈집 매입…부랴부랴 대책 마련
빈집과 잡목이 방치돼 흉측한 몰골로 남아있던 대구 북구 침산1동 오봉산길 마을.
최근 해당 부지에는 지상 4층 규모 복합커뮤니티센터와 공영주차장, 소규모 공원이 들어섰다.
낡은 경로당은 지상 2층짜리 흰색 건물로 깔끔하게 단장했고, 경사가 심한 골목길에는 주민들이 오갈 때 넘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길가에 손잡이가 설치됐다.
공영주차장 옥상에 조성된 정자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감을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자체가 2018∼2023년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시비 등 326억원을 들여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한 결과다.
이곳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이웃들과 하루에 몇번씩 정자에 모여 시간을 같이 보내는데 예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며 웃었다.
지역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철거 비용을 지원하거나 직접 빈집을 매입해 정비하는 등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부산시는 전국 최초로 2008년부터 '공·폐가 철거사업'을 시작했고, 2012년에는 취약계층을 위해 빈집을 리모델링한 후 반값으로 임대하는 사업인 '햇살둥지 사업'을 추진했다.
지금까지 빈집 3천689채를 철거하고, 654채를 리모델링하는 등 총 4천343채를 정비했다.
2025년 47억원을 투입해 180채를 정비하고, 2030년까지 2천채를 정비하기로 했다.
경사지 빈집을 포함한 대규모 재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시유지를 무상 제공하고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해 세계적인 디자인을 접목한 고품격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부산형 신주거모델'을 추진하기로 했다.
강원 춘천시는 5년간 마을 임시주차장이나 공용텃밭 등 공공용지로 활용하는 조건으로, 개인이 철거하기 어려운 빈집에 대한 철거 비용을 지원한다.
춘천시 관계자는 "공공 주차장, 공용텃밭 등으로 주차난 해소와 공동체 문화도 형성돼 사업을 지속해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전과 전북 등은 정비가 시급한 빈집을 매입해 철거한 뒤 주차장과 공원 등 주민 편의 시설로 바꾸고 있다.
전남 강진군과 부산 동구는 빈집을 개량해 임대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강진군은 리모델링한 뒤 귀농 귀촌인에게, 동구는 지역 예술인들에게 작업실로서 빈집을 저렴한 가격 혹은 무상으로 빌려준다.
경기도는 지난 9월 빈집 정비를 활성화하고자 건물을 철거하고 그 터를 공공 목적으로 활용할 경우 재산세를 감면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빈집을 철거해도 정작 늘어나는 세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도는 이번 건의안이 반영되면 흉물로 방치된 빈집의 철거가 가속화되고 철거 후 공공 용도로 탈바꿈시키는 정비 사업 활성화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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