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 사회가 일상이 된 지금, 여성의 출산 의사를 가르는 요인은 단순히 경제력이 아니었다. 부부 간의 ‘성평등’, 그중에서도 남편의 가사 분담과 아내의 경제적 협상력이 핵심 변수로 꼽혔다.

19일 육아정책연구소 학술지 육아정책연구 최신호에 실린 안리라 고려대 박사의 논문 ‘맞벌이 기혼여성의 출산 의사 예측요인 탐색’은 이 같은 결과를 제시했다. 연구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여성가족패널 3,314명의 자료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기반 ‘랜덤포레스트(Random Forest)’ 기법을 활용해 출산 의사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정밀 분석했다.

분석 결과, 성평등 요인이 여성의 출산 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남편의 가사노동 참여도와 아내의 경제적 협상력이 일정 수준 이상일 때 출산 의사가 높게 나타났으며, 부부가 ‘동등한 역할 분담’을 실천할수록 자녀 계획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아내의 소득이 남편보다 지나치게 높거나, 가사 부담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 출산 의사는 뚜렷하게 낮아졌다.

경제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지만, 단순히 소득이 높다고 출산 의사가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에 따르면 ‘육아에 적정하다고 인식되는 소득 수준’까지는 출산 의사가 상승했으나, 이를 넘어서면 오히려 감소하는 비선형 관계를 보였다. 즉 “돈이 많을수록 아이를 낳는다”는 통념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리라 박사는 논문에서 “가정 내 성평등이 확보될수록 맞벌이 여성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사회적 지지 체계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며 “이는 단순한 소득보다 훨씬 강력한 출산 동기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저출산 대책의 방향성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출산장려금, 대출금리 인하, 주거 지원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 중심 정책보다, 가정과 직장 내 성평등 구조 개선이 여성의 출산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남성의 가사·육아 참여 확대와 기업 내 육아휴직 문화의 확산이 저출산 해법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프랑스와 스웨덴은 모두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40%를 웃돈다. 한국은 아직 1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결국 출산율 회복의 열쇠는 ‘성평등한 가정’에 있다는 메시지다. 안 박사는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은 공동의 몫”이라며 “성평등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출산정책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