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출산율은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역설적으로 어린이 식품 시장은 사상 최대 규모로 성장하며 식품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나뿐인 자녀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골드키즈’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아동복, 육아 용품뿐 아니라 유아·어린이용 식품까지 빠르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최근 CJ제일제당을 비롯해 하림, 오뚜기, SPC, 매일유업 등 굵직한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어린이 식품 사업을 강화하면서 시장 경쟁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하림이다. 하림은 기존에 운영하던 HMR(가정간편식) 라인업과 육가공 역량을 기반으로 ‘키즈 맞춤 영양식’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장기 단백질 섭취 요구가 높다는 점에 주목해 아이용 닭가슴살, 어린이용 순살 치킨, 무첨가 소스 제품 등을 출시했다. 여기에 나트륨과 당류를 낮추고 식품첨가물을 최소화한 ‘클린 레시피’ 제품을 강화하며 부모들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림 관계자는 “어린이 식품은 단순히 맛이 아니라 안전성과 영양 균형이 핵심”이라며 “향후 유기농 라인업과 어린이 맞춤 간식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장 1위 CJ제일제당도 키즈푸드를 차세대 전략 사업으로 선정했다. CJ는 지난달 ‘비비고 키즈’ 출시를 공식화하며, 기존 아기용 이유식 중심 시장을 넘어 유아·아동 전 연령을 겨냥한 종합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냉동 HMR 기술을 활용해 어린이용 볶음밥, 불고기, 국물요리 등을 선보이며 푸드테크 기반 키즈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CJ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은 업계 전체에 ‘키즈푸드 전쟁’ 신호탄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유제품 기업들도 공격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매일유업은 이미 ‘상하치즈 키즈’ 시리즈로 안정적인 시장 입지를 확보한 가운데, 최근에는 어린이용 요거트·간식 제품을 늘리며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남양유업 역시 ‘아이꼬야’ 등 유아식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해 신제품을 발빠르게 출시해 왔다.
가공식품 강자인 오뚜기와 동원F&B도 키즈 라인을 강화 중이다. 오뚜기는 어린이 맞춤 카레, 어린이 라멘 등 기존 인기 제품을 저자극 버전으로 재해석한 제품으로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 동원F&B 역시 DHA·철분 등 영양을 강화한 키즈참치, 어린이 반찬류로 mother 소비층의 신뢰를 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SPC 그룹은 파리바게뜨를 통해 저당·저염으로 조정된 어린이 전용 빵과 샌드위치를 지속 출시하며 베이커리 시장에서도 키즈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이처럼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배경에는 ‘질 높은 영양’, ‘안전한 원재료’, ‘무첨가·저당’ 등을 중시하는 부모들의 소비 기준 변화가 자리한다. 장바구니 물가가 상승했음에도 키즈 제품 구매는 크게 위축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초보 부모층에서는 ‘프리미엄 키즈 라인’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키즈푸드 시장은 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성장했으며, 2030세대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제품 선호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식품업계는 키즈 시장이 단순한 ‘일시적 붐’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 분야로 보고 있다. 저출산으로 전체 아동 수는 줄어들더라도 부모의 ‘올인 투자’ 성향이 강해지면서 실제 시장 규모는 오히려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엔 간편성과 가격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영양·안전·전문성을 갖춘 키즈 전용 제품을 찾는 부모가 대다수”라며 “이 시장을 확보하는 기업이 앞으로 식품업계 미래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 하나에게 집중된 소비가 만들어낸 새로운 산업 지형. 저출산의 그늘 아래에서도 골드키즈 시장은 오히려 더 뜨겁게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