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가 도심 명문고의 전통마저 바꾸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잠실고등학교가 개교 43년 만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잠실고는 1982년 개교 이후 줄곧 남학생만 받아온 전통 있는 학교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간 지속된 저출생 여파로 서울 전역의 고등학교 신입생 수가 급감했고, 특히 남학생만 선발하는 체제에서는 안정적인 학생 모집이 점점 어려워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고교 입학 가능 인구는 2010년 약 13만 명에서 2024년 8만 명대로 줄어들었다. 이 같은 인구 구조 변화는 농어촌뿐 아니라 대도시 학교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잠실고의 학칙 변경을 승인해 2026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여학생 입학을 허용했다. 내년 3월 입학하는 1학년부터 남녀가 함께 수업을 받게 되지만, 현재 재학 중인 1·2학년은 졸업까지 남학교 체제가 유지된다. 완전한 남녀공학 전환은 2028년에야 이뤄질 전망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단순히 한 학교의 변화가 아니라, 학령인구 감소가 우리 교육 환경 전반을 재편하는 흐름 속에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남녀공학 전환, 학교 통합, 학급 수 축소가 잇따르고 있다. 송파구 역시 여학생의 진학 선택지가 제한적이라는 지역 여건과 학생 수 감소라는 현실이 맞물려 잠실고의 변화를 재촉했다.
잠실고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이번 전환을 계기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학교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잠실고의 사례는 학령인구 절벽이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닌 현재 진행형 위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과 상징성보다 생존과 적응이 중요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