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신혼부부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 일본 경제지 닛케이를 통해 제기됐다. 주거·대출·세제 등 각종 제도가 ‘미혼 단독세대’에게 더 유리한 구조로 설계돼 있어,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 되레 손해를 보는 역설적인 상황이 확산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혼인과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 기조와 실제 제도 운영 사이의 괴리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결혼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해석한다.
닛케이는 16일(현지시간) 보도에서 “2024년 한국에서 결혼한 부부 중 약 19%가 혼인신고를 1년 넘게 미뤘다”고 밝혔다. 결혼 이후 2년 이상 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도 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식은 사회적 의례로 치르지만 법적 혼인은 경제적 상황을 따져 결정하는 이른바 ‘위장 미혼’ 현상이 통계적으로 뚜렷해졌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특별한 사정이나 전입 문제 등으로 신고 시점이 늦어지는 사례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경제적 이유가 지연의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혼인신고를 뒤로 미루는 가장 큰 이유는 신고 이후 각종 제도에서 불리함이 커지는 현실이다. 청약·주거·대출 등에서 미혼 단독세대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상대적으로 많고, 부부 합산 소득 기준이 적용되면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부 청년 전·월세 대출은 미혼 단독세대를 우선 고려하는 구조여서, 혼인신고 이후 소득 기준을 합산하면 대출금이 줄거나 자격 조건이 사라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한 신혼부부 특별공급 제도는 유리한 면도 있지만, 실제 공급량이 제한적이고 경쟁률이 높아 실익이 떨어진다는 인식도 혼인신고 지연의 배경으로 꼽힌다.
대도시의 주거비 부담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한다. 서울의 PIR(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수)은 13.9배로, 월급을 1원도 쓰지 않고 모아도 14년이 걸리는 수준이다. 2030세대 상당수는 “혼인신고를 하면 오히려 불리해진다”는 판단 아래, 결혼식만 치르고 법적 혼인은 청약·대출 전략을 모두 검토한 뒤 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부 부부는 출산 이후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출생신고, 전입 요건, 청약 자격 등에서 제도적 충돌을 겪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한국 사회의 결혼 패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학자들은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분리되는 사회로 이미 진입한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결혼식 직후 혼인신고를 마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절차였지만, 이제는 ‘언제 신고할지’가 경제적 전략의 일부가 되면서 결혼의 법적 의미가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복지·세제·금융 제도가 혼인 이후 가구 형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혼인신고를 하면 가족 구성 기준이 단독에서 부부·가구 단위로 전환되고, 이 과정에서 소득·재산 기준이 강화되어 지원에서 탈락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혼인·출산을 장려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제도는 신고를 미루는 것이 더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놓고 있다”며 정책 전반의 정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닛케이는 기사 말미에서 “한국에서 혼인신고는 더 이상 결혼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 경제적 조건이 허락할 때 선택하는 절차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혼식과 혼인신고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제도적 공백도 확대되는 만큼, 향후 한국 정부가 혼인신고 이후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재편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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