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이혼 시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혼전계약서에 서명했던 한 여성이 이혼 소송 과정에서 법적 효력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27일 방송된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결혼 전 남편이 혼전계약서를 내밀며 각자 재산을 따로 관리하자고 했다”는 여성 A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A씨가 제출받은 계약서에는 ‘결혼 후 각자 벌어들인 소득은 각자의 재산으로 간주한다’, ‘집은 남편 명의로 구입하고 아내는 그 대금에 기여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상했지만, 남편의 “사랑하니까 더 확실히 하고 싶다”는 말에 믿음을 주며 서명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5년을 넘기지 못했고, 결국 A씨는 남편에게 이혼과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그러자 남편은 혼전계약서를 근거로 모든 요구를 거절하며 “약속을 어길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임수미 변호사는 “결혼 전 계약서라고 해도 무조건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민법상 강행규정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내용은 무효로 본다”며 “부부 일방에게 현저히 불리하거나 불공정한 조항이 있다면 계약서의 효력은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사랑하니까 믿고 서명해달라’는 식의 비대칭적 교섭 상황에서 체결된 문서는 법적으로도 자유로운 합의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또 “혼인기간 동안 형성된 재산은 명의와 상관없이 부부 공동의 협력으로 이뤄진 것으로 본다”며,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역시 경제적 기여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집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더라도, 혼인 중 형성된 재산이라면 아내의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제 판례에서도 가사노동과 육아, 정서적 지원 등은 공동재산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돼 분할 비율 산정에 반영되고 있다.

그는 “혼전계약서에 ‘집 구입에 아내는 기여하지 않았다’는 조항이 있더라도, 혼인생활 동안 실질적인 기여가 입증된다면 법원이 이를 반영해 분할을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또한 계약서가 작성된 시점과 형식도 중요하다. 혼인신고 전 공증을 받았는지, 내용이 구체적이고 공정한지, 그리고 양 당사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했는지 등 절차적 정당성이 판단의 핵심이 된다.

전문가들은 “혼전계약은 재산관계를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분쟁을 막는 긍정적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랑을 이유로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불평등한 조건을 받아들이게 하는 도구로 변질되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법적으로도 ‘부부재산계약’은 인정되지만, 그 효력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과 혼인공동체의 본질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결국 법원은 계약서의 존재 자체보다, 혼인기간 중 형성된 재산의 기여도·공정성·당사자의 자발적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게 된다.

‘사랑의 증명’이라 믿었던 한 장의 혼전계약서가, 이혼의 순간에는 불공정의 증거로 바뀌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