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본문과 관계없음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의 혼인 양상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관계와의 혼맥을 통해 경영 안정성과 외연 확대를 도모하던 ‘정략적 결혼’이 주요 흐름이었다면, 최근에는 재계 내부 또는 일반인과의 결혼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2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지정 총수가 있는 공시대상기업집단 81곳의 오너 일가 380명을 분석한 결과, 세대가 내려갈수록 정·관계 혼맥은 급감한 반면, 재계 집안 간 혼맥과 일반인 집안과의 결혼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가 확인됐다.

우선 정·관계 혼맥 비중은 오너 2세 24.1%에서 3세 14.1%, 490년대 정·관계 기반 네트워크가 기업 활동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에는 오너 2세대가 정치권과의 인연을 통해 ‘가문 간 연합’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HD현대, LS, SK그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 김영명 씨와,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은 고 이재전 전 대통령 경호실 차장의 딸 이현주 씨와 혼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관장과 결혼했다가 최근 이혼했다.

반면, 최근 세대로 갈수록 혼맥 구조의 중심축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재계 집안 간 혼인 비중은 오너 2세 34.5% → 3세 47.9% → 4~5세 46.5%로 꾸준히 증가했다. 정치권보다 동일 산업계 또는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기업가 집안과의 결속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또한 ‘비(非)재벌가 일반인’과의 혼인도 늘고 있다. 일반인 집안과의 결혼 비중은 2세 29.3%에서 3세 23.3%를 거쳐, 4~5세에는 37.2%로 뛰어올랐다. 최근 4~5세대는 전문직 종사자, 문화예술계 인물, 해외 유학생 등 다양한 배경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CEO스코어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과거에는 정·관계 혼맥이 사업 파트너십 확대에 도움됐지만, 이제는 오히려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가 더 큰 감시 및 규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투명성 요구가 커진 만큼, ‘정치적 인연’이 기업 이미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재벌가 혼인은 전략적 결합이 아니라 개인적 가치관과 전문성 중심으로 전환했다”며 “세대교체가 기업문화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